이 전시는 빛을 하나의 물질적 대상이 아닌, 기억을 통과시키는 매개이자 감각을 조직하는 형식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한다고 말할 때, 그 인식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즉각적인 것이 아니다. 감각의 체계, 축적된 경험, 기술적 환경은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에 깊숙이 개입하며, 그 모든 조건이 겹쳐진 결과로서 세계는 비로소 '보이게' 된다. 이 전시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구조에 주목하며, 빛을 통해 세계 인식의 조건을 다시 들여다보고자 한다.
빛은 언제나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잔여는 감각과 기억 속에 오래 머문다. 사라졌다고 믿는 장면들은 형태를 바꾸어 다시 떠오르고, 기억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흐르는 상태로 존재한다. 작업들은 이러한 빛의 양가적인 성질—찰나성과 지속성, 출현과 소멸—을 조형적 재료로 삼아, 감각과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고 축적되는지를 탐색한다. 관객은 흔들리고 흩어지는 빛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채 쌓아온 기억의 결을 천천히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전시에서 빛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요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과 기억을 매개하는 하나의 지각적 구조로 작동하며, 공간을 재구성하고 감각의 방향을 전환시킨다. 작품 속에서 빛은 응집되었다가 흩어지고, 선명해졌다가 흐려지며 공간의 깊이와 경계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기억이 결코 단일한 상태로 저장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재조합되고 재구성되는 운동의 흐름임을 암시한다. 관객이 경험하는 것은 하나의 고정된 장면이 아니라, 기억이 현재의 감각 속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다.
관객은 공간에 부유하는 빛의 패턴과 음영을 따라 이동하며, 자신의 경험 속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의 층위를 감각적으로 더듬어 나가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회상은 과거를 정확히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의 신체와 감각을 통해 다시 구성되는 형태에 가깝다. 빛의 변화에 따라 기억은 선명해지거나 희미해지고, 특정한 감정이나 장면이 불완전한 상태로 떠오른다. 이러한 경험은 기억이 언제나 현재의 조건에 의해 새롭게 작성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 전시의 작업들은 명확한 서사나 해석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빛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차이와 변화를 통해 관객 각자가 자신의 기억 조각을 연결하고 해체하며 의미를 구성하도록 여백을 남긴다. 하나의 장면은 동일한 상태로 반복되지 않고, 매 순간 다른 조합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 불확정성은 기억이 언제나 불완전하고 열려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영하며,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지평선'은 이러한 기억의 운동이 향하는 상징적인 경계다. 분명 존재하지만 완전히 도달할 수 없는 지점,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선. 그것은 기억이 결코 완결되지 않으며, 항상 새로운 감각과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지평선 너머에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정들, 형상화되지 않은 장면들, 경험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흐르고 있다. 이 전시는 그 경계를 고정된 목표로 제시하기보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상태로 남겨둔다.
결국 이 전시는 빛이라는 비물질적 언어를 통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기억해온 방식을 다시 비춘다. 빛이 공간을 채우고 사라지는 동안, 관객은 기억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유영하며 현재의 감각과 만나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우리가 보고 있다고 믿어온 세계는 과연 어떤 구조 위에 놓여 있었는가, 그리고 그 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쓰이고 있지는 않은가